왕숙 도시첨단산업단지 혁신클러스터 조성 구상. 자료=남양주시
최현덕 남양주시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왕숙 도시첨단산업단지에 예정된 데이터센터에 대해 “좋은 땅에 거대한 하드웨어만 갖추고 일자리를 안 만들면 도시첨단산업단지라는 원래 주제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업체들에 일자리 투자계획과 지역기업 상생계획을 요구했지만 아직 답을 받지 못했다고도 했다. 콘텐츠기업, IT기업, 미래첨단에너지기업을 유치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도 내놨다.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여기에는 반드시 경고해야 할 지점이 있다.
왕숙산단은 새 시장의 산업정책을 시험해 보는 실험장이 아니다.
이미 들어오기로 한 기업과 앞으로 들어왔으면 하는 기업은 같은 카드가 아니다.
이미 유치한 기업과 유치하고 싶은 기업은 다르다
왕숙에는 현재 우리금융그룹, 카카오, 신한금융그룹이 입주 예정기업으로 공식 등록돼 있다. 남양주시도 현재 왕숙 도시첨단산업단지 홈페이지에 이들 세 기업을 입주 예정기업으로 명시하고 있다.
현재 공개된 투자계획을 합치면 약 2조3천억 원이다.
우리금융의 AI 디지털 유니버스는 투자규모가 약 8,500억 원으로 확대됐고, 이미 건축허가까지 완료됐다. 연면적 약 9만8천㎡에 AI센터와 AI운영센터, 스타트업 육성공간 디노랩, 디지털 금융 전문인재를 양성하는 우리FIS 아카데미가 들어간다. AI 및 IT 전문인력 300명 이상이 상주할 계획이다. 남양주시는 지난 6월 건축허가 완료 사실을 밝히며 연내 착공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신한금융의 AI 인피니티센터도 단순한 서버 건물만 계획된 것이 아니다. 8,500억 원을 투자해 AI 데이터센터와 업무시설, R&D 연구시설을 함께 조성하고 신한금융 임직원과 협력사 직원 등 약 500명이 상주한다는 것이 남양주시가 지난해 공식 발표한 내용이다. 핀테크· AI 기업 협의체, 공유 업무공간, 산학협력도 계획에 포함돼 있다.
카카오는 세 사업 가운데 데이터센터 성격이 가장 강하다. 약 6,000억 원을 투자하는 두 번째 자체 데이터센터로, 완공 뒤 약 150명의 임직원이 근무할 예정이다. 그렇다고 서버실만 있는 것도 아니다. 지역상생과 사회공헌, 스타트업 육성, 소상공인 지원 등이 협약 내용에 포함돼 있다.
최 시장이 이를 다시 따져보겠다는 취지 자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검증과 백지화는 전혀 다른 문제다.
단순히 ‘거대한 하드웨어’라는 한마디로 묶어서는 안 된다
최 시장 발언에서 특히 우려되는 대목은 우리금융·신한금융·카카오의 사업을 사실상 하나의 데이터센터 문제로 묶어 바라보는 듯한 인상이다.
세 사업의 구성과 진행단계는 다르다.
특히 우리금융은 이미 건축허가까지 받았다. 이제 와서 이 사업을 신한이나 카카오와 똑같이 원점에 올려놓는다면 단순한 정책 재검토를 넘어 남양주시 행정의 신뢰를 스스로 흔드는 일이다.
더구나 남양주시는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우리금융의 300명 이상 AI 및 IT 전문인력 상주, 디노랩, 우리FIS 아카데미, 관내 중소기업 제품 활용 등을 미래산업 생태계 구축의 성과로 공식 홍보했다. 신한금융에 대해서도 500명 상주와 AI 및 R&D 업무거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데 시장이 바뀌자 이들 사업이 갑자기 일자리를 만들지 않는 거대한 하드웨어로 취급된다면, 결국 시장이 바뀔 때마다 기업유치의 평가 기준도 바뀐다는 잘못된 신호를 주게 된다.
최 시장이 기업들에 고용 확대와 지역기업 상생, R&D 기능 강화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남양주시가 기업유치 과정에서 더 많은 지역적 편익을 끌어내는 것은 시장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추가 요구와 기존 약속의 존중은 별개의 문제다. 새 시장이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고 해서 이미 진행 중인 투자사업을 다시 원점에 세울 명분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남양주 신규채용을 늘리고, R&D 인력을 더 상주시켜라. 협력기업을 데려오고 지역기업과 거래를 확대하라고 요구하라. 그런 협상은 얼마든지 해야 한다. 다만 더 받아내기 위한 협상이 이미 잡은 기업을 내보내기 위한 명분으로 변질돼서는 안 된다.
가장 위험한 것은 기존 기업을 흔들면서 더 나은 기업을 찾겠다는 판단이다.
콘텐츠기업, IT기업, 미래첨단에너지기업을 왕숙에 유치하겠다는 최 시장의 구상 자체에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
남양주가 그런 기업을 유치할 수 있다면 당연히 해야 한다.
그러나 기업유치에서 반드시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
유치한 기업과 유치하고 싶은 기업이다.
8,500억 원을 투자하고 건축허가까지 받은 우리금융과 앞으로 좋은 콘텐츠기업을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같은 저울에 올려서는 안 된다.
카카오와 신한도 마찬가지다.
기존 대기업을 보내고 난 뒤 누가 그 자리를 채울 것인지, 투자와 고용이 얼마나 더 나아질 것인지 아무것도 제시되지 않았다. 대체 카드도 없이 더 좋은 기업을 유치하겠다며 이미 확보한 투자를 흔드는 것은 무책임한 선택이 될 수 있다.
투자계획과 일정까지 공개된 기존 기업은 현실이다. 반면 대체기업은 아직 실체조차 없다.
남양주처럼 산업기반이 취약한 도시라면 이 차이를 더욱 무겁게 봐야 한다.
투자 신뢰는 한번 무너지면 돈으로 살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남양주시의 신뢰다.
기업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남양주시와 협의한다. 투자계획을 세운다. 토지를 검토한다. 설계비를 쓴다. 인허가 절차를 밟는다. 수천억 원 규모의 내부 투자결정을 한다.
그런데 시장이 바뀐 뒤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한다고 한다.
다른 기업들이 왕숙에 투자를 검토할 때 무엇을 생각하겠는가.
“남양주에서는 시장이 바뀌면 투자협약도 다시 검토되는가.”
이 의문이 생기는 순간 기업유치 경쟁력은 크게 떨어진다.
왕숙 도시첨단산업단지가 앞으로 정말 콘텐츠, IT, 미래에너지 기업을 유치하려면 오히려 지금 들어오기로 한 기업을 대하는 남양주시의 태도가 중요하다.
기업은 지원금만 보는 것이 아니다.
그 지방정부가 약속을 지키는지를 본다.
행정의 연속성을 본다.
정치가 투자결정을 흔드는 도시인지도 본다.
기업유치에서 신뢰는 산업용지보다 귀한 자산이다.
데이터센터의 문제는 백지화가 아니라 조건 강화로 풀어야 한다
그렇다고 전임 시정이 유치했다는 이유만으로 기존 사업을 무조건 성역화하자는 말은 아니다.
특히 카카오는 상주인력이 약 150명에 불과한 만큼 왕숙의 귀한 산업용지를 사용하는 데 따른 지역적 반대급부를 더욱 요구해야 한다.
신한에는 500명 상주와 R&D 기능을 실제 이행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우리금융에는 300명 이상의 AI·IT 인력과 디노랩, 우리FIS 아카데미가 남양주 청년과 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연계 강화를 요구해야 한다.
동시에 왕숙산단의 남은 부지에는 추가 데이터센터보다 고용과 산업 파급효과가 큰 첨단기업을 유치하는 데 매진하면 된다.
이미 유치한 기업의 부족한 부분은 보완하고, 앞으로 남은 공간은 보다 다양한 첨단산업으로 채우는 것. 이것이 왕숙산단의 산업구조를 균형 있게 만드는 현실적인 전략이다.
최현덕 시장에게 필요한 것은 원점이 아니라 숫자다
최 시장에게 지금 우선 필요한 것은 대체기업을 찾는 일이 아니다. 이미 유치한 우리금융·카카오·신한금융의 투자를 어떻게 남양주에 더 많은 일자리와 산업기반을 남기는 사업으로 만들 것인지가 먼저다.
데이터센터 비중이 지나치다면 R&D와 업무기능을 확대하도록 협상하고, 지역 고용과 기업 상생이 부족하다면 더 구체적인 계획을 요구하면 된다. 특히 세 사업은 진행단계와 내용이 서로 다르다. 이를 한꺼번에 원점 재검토 대상으로 묶기보다 사업별로 부족한 부분을 찾아 보완하는 것이 책임 있는 행정이다. 남양주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어렵게 잡은 기업을 다시 시험대에 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 투자가 실제 일자리와 산업생태계로 이어지도록 더 단단하게 만드는 일이다.
산업기반이 넘치는 도시라면 기업 하나를 놓쳐도 다시 기회가 온다.
남양주는 아직 그런 도시가 아니다.
왕숙산단은 남양주가 처음으로 제대로 된 산업도시로 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규모 카드다.
잘못 채워서도 안 된다.
하지만 이미 잡은 카드를 섣불리 버리는 것은 더 위험하다.
최현덕 시장이 전임 시장의 정책을 계승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남양주시라는 기관이 한 약속과 행정의 신뢰까지 외면할 권한은 없다.
왕숙에서 필요한 것은 치적 지우기도, 전임 시정의 무조건적인 계승도 아니다.
검증하고, 보완하고, 더 받아내는 것.
그것이 새 시장이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만약 실제로 백지화를 생각한다면 그 전에 반드시 시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이 기업들을 보내고도 남양주가 더 나아진다는 것을 말이 아니라 숫자로 증명해야 한다.
그 증명 없이 시작되는 원점 재검토라면, 남양주는 산업단지를 재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투자 신뢰를 원점으로 돌려놓는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