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남양주시가 쇠퇴해 가는 덕소역 인근 원도심에 58층 규모의 랜드마크 시티를 조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덕소역 개통 연도인 1939년에서 따온 39와 청년 세대를 상징하는 19를 더해 58층이라는 숫자를 도출했다는 설명은 언뜻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으로 들린다.
원도심에 청년의 활력을 불어넣고, 주거와 일자리를 한곳에 집약하겠다는 정책적 의도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화려한 조감도에 시선을 빼앗기기 전에, 냉정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사업은 막대한 투입 비용 대비, 시민이 체감할 만한 실효성을 낼 수 있는가.
숫자의 낭만, 사업성의 현실
가장 먼저 따져야 할 것은 58층이라는 숫자가 불러올 비용 구조다. 건축법상 50층 이상이거나 높이가 200m 이상인 건물은 초고층 건축물로 분류된다.
이 문턱을 넘는 순간, 재난 영향성 검토를 비롯해 강화된 내진·풍동 설계, 첨단 소방 설비 구축 등 법적 안전 요건이 층층이 추가된다. 49층과 50층은 단 한 층 차이지만, 사업비 구조는 완전히 달라진다.
인근 다산동 중촌마을에서 추진 중인 49층 주거재생혁신지구 사업의 건축비를 포함한 총사업비만 해도 1조 2천억 원에 달한다. 58층 사업이 감당해야 할 재원은 그와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막대한 비용이 덕소 원도심을 살리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냐는 점이다. 고금리와 원자재 가격 상승이 고착화된 지금, 면밀한 사업 타당성 검토는 선택이 아닌 의무다.
높이는 변수가 아니다
도시학자 제인 제이콥스 이래 수십 년간의 연구가 공통적으로 지목하는 도시 활력의 핵심 변수는 건물의 높이가 아니다. 접근성과 용도의 다양성, 그리고 공간의 밀도다.
서울 성수동이 청년 창업의 거점으로 부상한 것 역시 고층 개발의 결과가 아니었다. 직주근접을 가능케 한 교통 접근성, 그리고 다양한 용도로 전환할 수 있는 저비용 공간이 결합한 결과였다.
덕소 원도심의 쇠퇴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면 처방은 달라진다. 수도권 동부 교통망의 만성적 정체, 파편화된 가로 구조, 취약한 상업·생활 인프라가 누적되어 만든 결과다.
이러한 구조적 원인을 방치한 채 대규모 시설만 들어선다면, 유입 인구를 소화할 기반 없이 교통 부하만 가중되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주변 인프라가 채워지기도 전에 대형 시설이 먼저 들어서는 순서의 오류로 그 대가를 치른 곳이 한둘이 아니다.
투자 순서가 결과를 바꾼다
대형 단일 프로젝트와 분산 투자 중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인지는 이념이 아닌 데이터의 문제다.
같은 예산을 교통 인프라 개선, 생활권 단위 공공시설 확충, 소규모 거점 공간 조성에 분산 투입했을 때와 단일 초고층 랜드마크에 집중 투입했을 때, 어느 쪽이 시민의 일상을 실질적으로 바꾸겠는가. 남양주시는 이 질문에 대한 객관적인 비교 분석 데이터를 공개적으로 제시한 적이 있는가.
행정이 답해야 할 숫자
남양주시가 지금 답해야 할 것은 스토리텔링이 아니라 숫자다.
이 건물이 완공된 후 덕소 주민의 평균 통근 시간은 줄어드는가. 실질적인 일자리는 몇 개 창출되며, 그 비용은 일자리 하나당 얼마인가. 주변 상권과 생활 인프라에 미치는 파급 효과는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랜드마크 사업 자체를 덮어놓고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왜 반드시 58층이어야 하는지, 그 막대한 사업비가 다른 대안보다 명백히 효과적인지, 그 합리적 근거를 시민 앞에 투명하게 내놓아야 한다는 뜻이다.
39와 19를 더해 58을 만드는 방정식은 낭만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시민이 원하는 것은 스카이라인이 아니라 나아진 일상이다.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삽을 뜨는 것은, 덕소의 미래를 숫자 하나에 담보 잡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