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전 10시, 남양주 중심가는 적막에 잠겨 있다. 상가 절반 가까이 셔터가 내려진 채, 임대 문의 현수막만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문이 열린 곳이라고는 약국, 슈퍼마켓, 부동산 중개소 정도가 고작이다. 생존형 업종만 간신히 버티는 형국인 셈이다. 이것이 인구 73만 도시가 마주한 평일 오전의 민낯이다.
남양주는 낮이 되면 도심 공동화 현장으로 변모한다. 이는 단순한 과장이 아닌, 데이터가 증명하는 서늘한 현실이다.
73만 인구의 허상: 통계가 입증하는 유출
통계청 자료와 이동통신사 빅데이터가 보여주는 흐름은 결코 가볍지 않다. 2020년 인구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남양주시의 주간 인구 지수는 85.8에 머물렀다. 주간 인구 지수가 100 미만이면 베드타운으로 분류되는데, 이는 낮 시간대에 인구가 외부로 유출되는 주거 중심 도시임을 의미한다.
특히 95 미만은 유출이 심각한 강한 베드타운으로 평가되는 만큼, 남양주시의 85.8은 이 기준에 확실히 부합하는 수치다. 낮 시간대 공동화가 두드러진 대표적인 사례라 볼 수 있다.
약 73만 명에 이르는 상주인구 가운데 상당수가 낮 시간대에 타 지역으로 이동하는 흐름이다. 주간 인구 지수 85.8은 상주인구 대비 약 14.2%가 낮 시간대에 도시에서 빠져나간다는 뜻이다. 이는 수도권 내에서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유출로, 인구 증가 속도에 비해 일자리와 산업 등 도시의 자족 기능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타 도시와 비교하면 이 특징은 더욱 명확해진다. 서울 강남구는 주간 인구 지수가 192.7에 달해 인구가 폭발적으로 유입되며, 성남 분당구(판교 포함) 역시 판교테크노밸리 효과로 112.1을 기록한다. 이천시 또한 SK하이닉스 등 대기업 집중으로 114.6을 나타내며 낮 시간대에 인구가 유입되어 상권과 도시 활력이 살아나는 모습이다. 시민들의 일터가 시내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남양주시는 낮 시간대에 인구의 약 14%가 증발하는 구조다. 소비 주체가 사라지니 상권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는 것이다.
다산신도시의 경고: 신도시 공실률 1위의 충격
다산신도시는 남양주 낮 인구 공동화 현상의 상징이 됐다. 10여 년 전만 해도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함께 들어선 상가, 지식산업센터가 완판되며 남양주 경제의 미래로 기대를 모았으나 현실은 냉혹했다.
지난해 다산신도시 집합상가 공실률은 16%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공실이 많기로 소문난 하남 미사신도시보다도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지식산업센터는 더 심각하다. 일부 센터의 공실률이 70%를 넘어섰다는 언론 보도도 나오는 실정이다. 분양 당시의 장밋빛 전망은 온데간데없다. 이유는 명확하다. 입주민 상당수가 서울 등 외지로 출근하기 때문이다.
낮 인구가 급감하니 상권이 형성될 리 만무하다. 인력풀도, 소비 시장도, 비즈니스 생태계도 없는 곳에 기업이 입주할 유인이 없어서다. 일부 매체는 다산신도시 상가 권리금이 사실상 제로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과거 억 단위로 거래되던 상가가 지금은 공짜로 줘도 주인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임대료 부담이 대폭 낮춰졌음에도 여전히 공실인 이유는 단순하다. 장사가 안 되기 때문이다.
낮시간의 공허
남양주 음식점의 시간대별 매출은 낮에 상대적으로 한산하고 저녁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서울 강남이나 SK하이닉스가 있는 이천은 점심 매출 비중도 높지만, 남양주는 직장인 유출로 낮 시간대 손님이 적은 탓이다.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식당들이 저녁 몇 시간에 의존해야 하는 기형적인 구조라 할 수 있다.
서울 강남은 그렇지 않다. 점심시간 매출이 전체의 30%를 상회하며, 저녁 못지않게 낮 매출이 높다. 직장인들이 낮에 몰려들기 때문이다. 이천 역시 점심 매출 비중이 상당하다.
하지만 남양주의 낮시간엔 손님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서울로 떠난 까닭이다. 저녁 몇 시간에 생존을 걸어야 하는데, 이것만으로는 치솟는 임대료와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꺼져가는 상권의 불빛
통계는 냉정하다. 남양주시는 개업 대비 폐업 비율이 1을 상회하며 상권의 외연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는 대표적인 지역으로 꼽힌다. 특히 2025년 1분기 경기도 음식점업 기준으로 남양주의 개업 대비 폐업 비율은 1.61에 달하며, 이는 경기도 31개 시·군 중 최상위권에 해당한다.
이러한 현상의 결정적 원인은 낮 인구의 부재에 있으며, 남양주시는 심각한 공실률과 연계되어 상권 위축 현상이 더 두드러지는 양상이다. 아무리 맛이 훌륭하고 가격 경쟁력을 갖췄더라도, 절대적인 유입 인구가 적으면 버틸 재간이 없다. 낮 시간대는 텅 비고 저녁 짧은 시간에만 매출이 집중되는 구조로는 수지타산을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상권 붕괴의 악순환이다. 점포 한두 곳이 문을 닫기 시작하면 상권 전체의 활력이 사그라들고, 이는 곧 인근 가게의 매출 하락으로 이어지는 도미노 현상을 초래한다.
결국 남양주가 낮에는 텅 빈 도시, 밤에는 주차장이라 불리는 전형적인 베드타운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밤이면 아파트 단지마다 차들이 빼곡히 들어차지만, 정작 해가 뜨면 생업을 위해 도시를 떠나야 하는 베드타운의 서글픈 자화상인 것이다.
악순환의 블랙홀
낮 인구 공동화는 어떻게 도시 경제 전체를 집어삼키는가? 그 구조적 메커니즘은 명확하다. 출발점은 일자리 부재다. 남양주에는 100명 이상 고용하는 공장이 드물고, 대기업이나 중견기업도 거의 없다. 주민들이 서울 등으로 출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로 인해 낮 인구가 급감하고 소비 주체가 사라진다. 소비자가 없으니 상권이 무너지고 폐업률과 공실률이 치솟을 수밖에 없다. 상권 붕괴는 지방세수 감소로 직결된다. 소득세, 재산세, 취득세가 모두 줄어든다.
재정이 부족해지니 기업 유치를 위한 인프라 투자나 교통 개선도 요원해진다. 인프라가 부족하니 기업들은 더욱 입주를 기피하게 된다. 결국 일자리는 생기지 않고,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악순환이 완성되는 셈이다. 남양주는 이 블랙홀에서 40년째 빠져나오지 못하는 형국이다.
낮에도 사는 도시들
성남 판교는 다르다. 판교테크노밸리에는 1,700여 개 기업에서 8만 명이 넘는 직원이 일한다. 낮 인구가 급증하니 식당은 예약이 필수고, 카페는 직장인들로 붐빈다.
이천 역시 SK하이닉스 덕분에 주간 인구 지수가 110을 넘으며 상권이 살아 숨 쉰다. 차이는 명확하다. 이들 도시엔 기업이 있고, 사람들이 지역 내에서 일한다는 점이다. 즉, 낮에도 도시가 살아있는 것이다.
왕숙, 또 하나의 실패한 베드타운이 될 것인가
곧 왕숙신도시가 열린다. 6만 가구, 15만 명 이상의 인구가 유입될 예정이다. 만약 이들마저 서울로 출근한다면 어떻게 될까? 다산신도시의 상가 악몽이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 왕숙의 상가와 지식산업센터 역시 공실로 넘쳐날 것이고, 남양주 전체의 낮 인구 공동화는 더욱 심화될 공산이 크다.
이미 여러 언론과 부동산 매체 등에서 왕숙신도시가 다산신도시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며, 일자리 없는 신도시는 결국 또 하나의 베드타운일 뿐이라는 경고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왕숙 첨단산업단지에 실제로 기업이 들어온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수만 명이 왕숙에서 일하게 되면 낮 인구가 급증하고, 점심시간 식당과 카페가 붐비게 된다. 퇴근 후 지역 내 소비가 늘어나며 상권이 살아나고 세수가 증대되는 선순환이 시작될 것이다.
도시가 숨 쉬려면
도시학자 제인 제이콥스는 저서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에서 도시의 거리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북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정 시간대에만 북적이는 도시는 죽은 도시라는 것이다. 남양주는 현재 반쪽짜리 도시다. 하루 24시간 중 저녁 6시간만 살아있고, 나머지 18시간은 죽어있는 셈이다.
도시가 진정으로 살아나려면 오전에도, 점심에도 거리에 활기가 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한 유일한 해법은 일자리 창출이다. 사람들이 남양주에서 일하게 만들어야 한다.
다산의 교훈, 왕숙의 선택
다산신도시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아파트만 짓고 일자리를 만들지 않으면 도시는 죽는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신도시 공실률 1위라는 성적표가 이를 말해준다. 이제 왕숙신도시는 갈림길에 서 있다. 다산의 길을 따라갈 것인가, 다른 미래를 개척할 것인가?
왕숙 첨단산업단지 120만 제곱미터에 아직 본격적인 입주 계약이 체결된 대기업은 거의 없다시피 한 실정이다. 우리금융그룹·카카오·신한금융그룹 등 몇몇 대형 기업과 MOU(투자 의향 협약)는 체결됐으나, 이는 법적 구속력이 강한 본계약이 아닌 예비 단계에 불과하다. 착공과 실제 입주가 본격화되지 않는 한, 지금의 흐름으로는 왕숙이 73만 베드타운을 100만 베드타운으로 키우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여전히 농후하다.
지금이 골든타임이다. 대기업 앵커 시설을 포함해 양질의 일자리를 유치해야 한다. 그래야 왕숙이 살고, 남양주가 산다.
텅 빈 도시의 경고
오전 10시 남양주. 텅 빈 거리와 닫힌 상점, 높은 공실률은 73만 도시의 민낯이다. 수많은 주민들이 서울 등으로 떠나 그들의 시간과 돈을 외부에 쏟는다. 남양주는 단지 잠만 자는 곳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이 지독한 악순환을 끊는 방법은 단 하나, 일자리 창출이다. 왕숙신도시가 마지막 기회다. 다산의 실패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 아파트 숲이 아닌, 기업과 사람이 공존하는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도시가 숨 쉬려면 24시간 맥박이 뛰어야 한다.
남양주의 맥박은 지금 많이 약하다. 생명력을 잃고 있는 도시에서 살아있는 도시로 나아갈 것인가. 선택은 지금, 바로 이 순간에 달려 있다.
✍️ [남양주, 길을 묻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남양주의 길은 어디로 향해야 합니까?
필자 소개 : 온라인 시민커뮤니티 왕숙진접사랑 회장(닉네임:달빛벗)
[기획연재: 남양주, 길을 묻다] 앞으로 이런 내용을 다룹니다
제1편: 73만 명의 역설,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난한 대도시
제2편: 시간 도둑, 남양주 통근자의 하루는 왜 18시간뿐인가
제3편: 텅 빈 도시의 낮: 오전 10시, 남양주는 고요하다
제4편: 재정자립도 꼴찌, 왜 남양주는 가난한가
제5편: 앵커 기업이 도시의 운명을 바꾸는 법
제6편: 왕숙신도시, 구원인가 재앙인가
제7편: 자족도시를 위한 마지막 골든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