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전기 왕실의 간절한 염원과 예술적 정수가 담긴 대형 범종이 마침내 그 가치를 온전하게 인정받았다.
국가유산청은 1469년 제작된 이후 550여 년 동안 한 번도 자리를 옮기지 않고 남양주 봉선사를 지켜온 보물 남양주 봉선사 동종을 국가지정문화유산 국보로 지정 예고했다고 4일 발표했다.
이번 승격 결정은 해당 유물이 지닌 독보적인 보존 상태와 조선 초기 범종 양식의 완성도를 높게 평가한 결과다.
5세기를 넘나든 보존성과 역사적 정통성
남양주 봉선사 동종은 조선 제8대 국왕인 예종이 부왕인 세조의 명복을 빌기 위해 봉선사를 창건하면서 제작하여 봉안한 유물이다. 예종 원년에 완성된 이 동종은 높이 238cm, 입지름 168cm, 두께 23cm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이처럼 거대한 범종이 제작 당시의 봉안처인 봉선사 종각에서 단 한 번의 이운 과정 없이 오늘날까지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전란이나 사찰의 소실 등으로 인해 자리를 옮기거나 훼손되는 경우가 많은 문화유산의 특성을 고려할 때, 남양주 봉선사 동종의 사례는 지극히 이례적이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이 유물이 균열이나 구조적인 결함이 거의 발견되지 않을 만큼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조선 시대 왕실 발원 대형 범종 가운데 유일하게 원위치를 고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상징성이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이는 단순히 오래된 종을 넘어, 당대 왕실의 권위와 효심이 서린 공간의 역사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조선 전기 범종 양식의 완성... 예술적 성취의 집약체
예술적인 측면에서도 남양주 봉선사 동종은 조선 전기 범종 양식의 전형을 완성한 기준작으로 손꼽힌다. 이 종은 고려 시대부터 이어져 온 한국 동종 고유의 문양 요소를 유지하면서도, 중국 동종의 양식을 부분적으로 수용하여 새로운 미감을 창출했다.
종의 몸체에는 당대 최고의 문신으로 추앙받던 강희맹이 주종기를 짓고, 명필 정난종이 글씨를 쓴 기록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 제작 배경과 연대, 참여 인물을 명확히 알 수 있다.
특히 이 종의 제작에는 흥천사명 동종과 옛 보신각 동종을 만들었던 당대 최고의 장인들이 대거 참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남양주 봉선사 동종이 당시 국가적인 역량이 집중된 최고의 예술품이었음을 증명한다.
세밀하게 조각된 용뉴와 정교한 문양은 조선 초기 금속 공예 기술의 정점을 보여주며, 학술적으로도 조선 전기 종의 형태 변화를 연구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자료로 기능하고 있다.
이번 국보 승격 예고는 우리 문화유산이 지닌 시간의 가치와 예술적 성취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5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변치 않는 소리를 간직해 온 남양주 봉선사 동종은 이제 국가의 가장 소중한 보물로서 그 역사적 울림을 이어가게 되었다.
국가유산청은 30일간의 예고 기간을 거쳐 각계의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유산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국보 지정을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